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칠판에 적지 못한 말들

 저는 학교에서 아이들에게 ‘태영쌤’이라 불리며 화학을 가르칩니다. 때로는 엄한 목소리로 질책도 하고, 입시와 성적을 이야기하기도 합니다. 하지만 돌아서서 화학실 창밖을 바라볼 때면, 저 역시 흔들리는 한 사람일 뿐이었습니다.

 지난 시간, 참 많은 이별과 만남이 제 곁을 스쳐 지나갔습니다. 감당하기 벅찬 슬픔이 소나기처럼 쏟아지던 날도 있었고, 학생들의 맑은 웃음이 알사탕처럼 굴러와 위로가 되던 날도 있었습니다. 그럴 때마다 저는 칠판 귀퉁이에, 포스트잇에, 혹은 시험지 여백에 차마 적지 못한 마음들을 글로 옮겼습니다.

 그렇게 글이 쌓이기 시작한 지 어느덧 십여 년입니다. 쌓인 글도 세어보니 거즘 삼백여 개가 되어 버렸더군요. 흩어지면 그저 잊혀질 게 뻔한 기억을 모아놓고 보니, 이것은 저의 이야기이자 동시에 제 주변 여러 사람의 이야기가 되었습니다. 사실과 진심이 뒤섞인 십여 년의 기록 중에서 오십여 개를 모아, 한 편의 ‘옴니버스 영화’ 같은 흐름으로 엮어 이제야 세상에 내놓습니다.

 이 과정에서 저는 글 하나하나를 시간의 흐름과 감정의 결에 따라 ‘사랑과 가족, 상실과 회복, 나의 학생들, 삶의 철학’이라는 네 개의 액자에 나누어 담았습니다. 각각의 글 조각은 액자 속에서 서로를 보듬으며 이야기를 나누고 있을 것입니다. 그렇게 채워진 네 개의 액자들 역시 서로 재잘거리고 이어지며 작품집이라는 하나의 큰 액자 안에서 멋쩍게 흐르게 될 것입니다. 이 흐름을 천천히 따라가다 보면, ‘선생님’이라는 가면 뒤에 숨겨두었던 날것 그대로의 저를 마주하게 될지도 모르지요.

 저에게 글을 쓴다는 것은 『슬픔은 슬픔대로 미분해 흘려보내고 기쁨과 사랑은 그 느낌대로 적분해 껴안으면서』 비로소 다시 새벽에서 깨어나 아침을 맞이하는 과정입니다. 교실 뒤편에서, 혹은 운동장 계단에서, 긴박한 찰나의 교무실에서, 때로는 실험실에서, 그리고 어느 새벽의 책상머리에서 쓰인 이 글뭉치가 당신의 마음에 닿아 작은 꽃으로 피어나길 희망합니다.

2025년 어느 날
김 태 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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